《게슈탈트 붕괴하기》

공간 힘은 2024년 4월 16일 화요일부터 2024년 5월 4일 토요일까지 <2023 큐레토리얼 프로그램> 결과전시를 개최합니다. 공간 힘 ‘큐레토리얼 프로그램’은 지역의 큐레토리얼 활동을 활성화하고자 2020년부터 소수의 참여자를 선정, 참여자들이 첫 기획 전시를 실행하도록 지원해오고 있습니다. 2023년은 김도형, 정민주 두 명의 기획자가 참여하여, 약 1년 간 전시의 주제, 작가 및 작품 연구 등 전 과정을 고민한 결과로써 전시를 개최하고자 합니다. 아래 내용 참고하시어 많은 관심과 방문 부탁드립니다.

전시명
게슈탈트 붕괴하기

참여작가
박병래, 우주언, 이주원

기획
김도형

내용
전시는 믿음(확증편향)의 생성과 구조에 대한 질문에서 출발합니다. 기획자는 정보가 왜곡되는 방식, 그것이 사람들을 속이고 믿음을 심는 방법과 그렇게 만들어진 믿음의 이미지가 드러나는 방식을 총체적으로 탐구해봅니다. 그리고 이번 전시를 통해 그동안의 믿음을 재고하고 이질감을 느끼게 하는 일명, ‘게슈탈트 붕괴’ 현상을 발생시키고자 합니다.

전경 사진
홍진훤

전시 기간
2024년 4월 16일 (화) ~ 2024년 5월 4일 (토) (*매주 월요일 및 공휴일 휴관)

전시 장소
공간 힘 (부산 수영구 수미로50번가길 3, 지하)

관람 시간
11:00-19:00

주최 및 주관
공간 힘

후원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시각예술창작산실 공간지원



《게슈탈트 붕괴하기》

전시 《게슈탈트 붕괴하기》는 다큐멘터리 작가 요나스 벤딕센(Jonas Bendiksen)의 영상작품이자 사진집인 『더 북 오브 벨레스(The Book Of Veles)』의 제작 과정과 출판 이후의 상황을 알아보는 것에서 시작되었다. 해당 작품은 2016년 미국 대선 당시, 친 트럼프 성향의 가짜뉴스를 대량으로 생산해 낸 벨레스(Veles)지역의 취재 내용을 담고 있다. 작가는 벨레스를 방문해 도시의 모습을 촬영하고, 가짜뉴스를 제작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인터뷰하며 영상과 사진집으로 제작했다.

흥미로운 점은 이 사진집에 등장하는 사람과 동물은 모두 컴퓨터로 합성한 그래픽 이미지이며, 짧은 에세이는 생성형 인공지능인 챗GPT(ChatGPT)를 이용하여 작성된 글이라는 점이다. 즉 작가가 벨레스지역을 방문했다는 사실 말고는 우리가 진실한 것이라고 부를 만한 내용이 작품에 담겨 있지 않다. 요나스 벤딕센은 사진집에 실린 글과 사진이 조잡한 수준의 속임수임을 누군가가 발견해주길 의도했다.

그러나 『더 북 오브 벨레스』는 출판과 동시에 주변 작가와 독자들에게 큰 호평을 받았고, 영상작품은 가장 큰 포토저널리즘 페어로 알려진 <비자 푸르 리마주(Visa pour l’Image)>에서 스크리닝 되었다. 작가의 의도와는 다르게 아무도 작품에 의심의 목소리를 내지 않았다. 결국 작가가 직접 이 작업이 조작된 것이라고 밝히게 되었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사람들이 이 작품을 진실한 것으로 받아들이게 된 과정이다. 이 책에서 사실과 구분하기 어려울 만큼 정교하게 조작된 사진이 사용되었거나, 누구나 납득할 만한 검증된 자료가 제시되지는 않았다. 조잡하게 합성된 사진과 AI로 작성된 글을 다듬어놓은 이 작품이 큰 호평을 받은 이유는 요나스 벤딕센이라는 작가가 여태까지 해왔던 작업들 때문일 것이다. 더불어 그가 매그넘 포토스의 회장을 할 만큼 영향력 있는 인물이였기 때문이기도 하겠다.

작가는 인터뷰에서 “이 책의 이야기가 사람들이 원하는 방식에 부합했기 때문에 그대로 받아들였다고 생각한다”고 말한다. 사람들은 유명 사진작가인 요나스 벤딕센의 명성과, ‘다큐멘터리’ 사진은 항상 진실할 것이라는 믿음으로 인해서, 그리고 인터뷰 내용처럼 사람들이 작가로부터 기대하고 듣고 싶었던 내용이라는 점에서, 눈과 귀를 스스로 가리게 되었을 것이다. 그 결과, 도심을 돌아다니는 곰 사진이나 게임 캐릭터 같은 사람의 모습은 의심의 대상이 아닌 사실로 받아들여지게 되었다.

위와 비슷한 사례, 즉 믿음의 이름으로 눈과 귀를 가리게 되는 현상은 오늘날 ‘필터 버블(filter bubble)’로 알려진 알고리즘 문제에서 대두된다. 또다른 예시로, 이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사실이 아님을 알고 있는 ‘선풍기 괴담’이 있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한 번쯤은 들어봤을 괴담으로, ‘선풍기를 틀고 자면 죽을 수도 있다’는 정말 짧고 간결한 내용이다. 여기에 “밀폐된 공간에서 틀면 죽을 수 있는 확률이 더 높아진다”, “선풍기 바람을 직접 맞지 않고 벽을 통해 맞으면 괜찮다” 등 점점 내용이 늘어나기도 했다. 이와 관련해서 인터넷 검색이 가능한 가장 빠른 시기의 언론보도는 1927년 7월 31일자 『중외일보』에서 발견할 수 있다. 기사 가운데 하나에서, “선풍기병 - 신기하다는 전기 부채의 해. 잘못되면 생명 위험”하다는내용을 담고 있다. 그리고 이 괴담은 2007년까지도 뉴스에서 다뤄졌다. 무려 80년 전통의 역사가 있는 괴담인 셈이다. 우리는 어떻게 이렇게 터무니 없는 내용을 오랜 세월 믿게 된 것일까.

이 괴담에 힘을 실어준 건 다름 아닌 언론과 의사들이었다.『뉴욕 타임즈』에서 추측한 것처럼 전력 사용량을 낮추기 위한 정부의 음모였든지, 무지에서 오는 해프닝이었든지 간에 진실은 크게 중요하지 않다. 온 국민이 의사나 교수의 인터뷰를 보고 비판이나 의심 없이 그들의 말을 받아들였다는 것이다. 그 결과 선풍기를 틀고 수면 중 사망한 사건에
대해 평소에 지병을 앓고 있었다거나, 사망 전 과도한 음주를 했다는 합리적인 이유보다는, 사건 현장에 선풍기가 작동 중이었다는 내용이 더욱 강조되어 뉴스에서 보도 되었다. 어떤 측면에서는 대한민국은 80년이라는 시간 동안 선풍기가 사람을 죽이는 나라가 된 셈이다.

《게슈탈트 붕괴하기》는 세 작가의 작품을 통해서, 우리에게 제공되는 정보에 대한 경고와 그 정보를 이용하여 사람들을 속이는 방법(믿음을 심는 방법), 마지막으로 사람들 마음에 심어진 믿음에 대해 이야기한다. 전시는 뉴스, 인터뷰 등 지겹도록 익숙한 미디어 형식을 통해 구성되어 있다. 이는 역설적이게도 모두가 알고 있는 익숙한 방식이기 때문에 거부감 없이 새로운 정보를 제공하는 형식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사실이라고 할 수 있는 내용을 일명 ‘삐라’라고 불리는 북한의 대남 전단 형태로 제공한다면 사람들은 그 정보를 사실로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이와 같이 정보의 내용보다는 정보를 전달하는 방식에 따라서도 신뢰도가 결정되기도 한다.

전시장을 들어가면 한 쪽 벽면을 가득 채운 우주언의 <바이러스 프리 댄스> 퍼포먼스 작품 영상을 볼 수 있다. 소리 없이 재생되는 이 퍼포먼스 영상에서는 팬데믹 당시 프랑스의 강력한 이동제한 조치에 대한 뉴스 영상이 작가의 움직임에 따라 변형된다. 그 옆의 <구글 위스퍼>에서는 언어의 번역 과정에서 발생하는 의미의 변질을 직관적으로 보여준다. 이주원의 세 가지 모큐멘터리 작품은 전문가의 인터뷰, 뉴스라는 형식의 차용, 자막 없이 알 수 없는 외국어, 출처가 불분명하지만 그럴듯한 증거자료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러한 요소들을 적절히 사용하여 진지하게 만들어낸 영상들은 설령 터무니 없는 주장을 하더라도 쉽게 의심하지 않게 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 이를 통해 가짜뉴스가 우리를 속이는 다양한 방법, 다시 말해 우리가 가짜뉴스를 믿게 되는 과정을 생각해볼 수 있게 한다.

박병래의 작품을 통해서도 우리가 무의식 중에 당연하다고 여기는 것을 한 번 더 생각해볼 수 있다. 방송 광고에 나오는 희망찬 미래에 대한 찬양과 남자/여자의 고정된 역할과 이미지, 언론을 통해 나쁜 식당의 대표 이미지가 되어버린 미원 등을 작품에서 살펴볼 수 있다. 이것들이 언제부터 당연한 것이 되었는지 고민할 수 있게 한다.

최근에 이른바 ‘손가락 사태’라고 불리는 이슈가 있었다. 그런데 이는 일부에서만 큰 논란이 되었던 것 같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그것이 문제가 된다고 생각하지 못하거나, 이슈 자체를 인지하지 못하기도 했다. 이번 전시 《게슈탈트 붕괴하기》는 이처럼 당연하게 여겨지는 정보와 그에 대한 믿음이 정말 그러한지 질문해보는 데서 출발했다. 우리가 태어난 순간부터 자연스럽게 눈을 깜빡이고 숨을 쉬는 것처럼, 평소에는 의식하지 못하지만 그 행위를 인지하는 순간에 어색함을 느끼게 되는 것을 ‘게슈탈트 붕괴 현상’이라고 한다. 믿음의 문제를 재고해보면서 일으킬 수 있을 ‘게슈탈트 붕괴 현상’의 이질감이 믿음의 틀을 깰 수 있길 기대해본다.

(글: 김도형)